‘XX번 하면 떠오르는 선수는?!’ 배구 등번호에 숨긴 사연들

매거진 / 서영욱 기자 / 2020-12-30 03:54:32

종목을 불문하고 팬들은 스타 플레이어를 기억한다. 이름을 잘 몰라도 경기 장면, 생김새, 플레이 스타일을 떠올린다. 여기에 도움을 주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등번호다. 축구에서 ‘에이스’나 ‘키플레이어’를 나타내는 10번 또는 11번이 대표적이다. 배구는 축구, 야구, 농구 등 다른 종목과 견줘 조금 차이가 있다. 상징적인 선수나 포지션을 나타내는 등번호가 많지 않다. 그러나 V-리그에도 좋은 예가 있다. 10번 하면 김연경(흥국생명)을 바로 꼽을 수 있다.
 


배구 등번호, 1930년대 이후 등장
프로스프츠에서 등번호가 도입된 건 올해를 기준으로 100년이 다 되어간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가 등번호 시초다. 1929년 선수들이 유니폼 뒷면에 번호를 달고 그라운드로 나왔다. 양키스 선수들을 시작으로 메이저리그 다른 팀들을 비롯해 다른 종목으로 퍼졌다. 메이저리그에 앞서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는 1년 전인 1928년 8월 25일 아스날과 웬즈데이(현 셰필드 웬즈데이), 첼시와 스완지 경기에서 아스날과 첼시 선수들이 이 경기에 한해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프로스포츠에 등번호를 도입한 시초는 양키스 선수들이라는 게 정설이다.

배구는 언제부터 등번호가 도입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아니, 찾기 힘들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소개하고 있는 공식 역사에도 유니폼 관련 규정은 있지만 등번호를 따로 소개한 항목은 없다. 배구 유니폼 관련 해외 사이트들을 살펴봐도 시작을 정확하게 알린 곳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유추해 볼 수 있다. 기록 사진과 관련 기사, 그리고 글을 살펴보면 미국에서 1930년대부터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선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역시 양키스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시기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선수들도 등번호가 있는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등번호는 선수 분류를 위해 유니폼에 새겨넣는 것이다. 심판이 선수를 지목할 때 번호를 말하거나 숫자를 나타내는 수신호를 활용한다. 특히 단체 종목인 구기(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가 대표적이다. 또한 스포츠 경기에서 기록상 편의를 위해 등번호와 포지션을 연결시키기도 했다. 축구의 경우 그 전통이 남은 리그가 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는 골키퍼 등번호를 1, 13, 25번으로 정해뒀다. 프랑스 리그앙(1부리그) 역시 골키퍼의 경우 1, 18, 30번을 달도록 규정했다.


V-리그, 1번부터 20번까지 규정
FIVB는 1번부터 18번까지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다 등번호 사용 범위를 넓혔다. 월드리그(남자), 월드그랑프리(여자) 등 이벤트 대회에서는 참가 선수 등번호가 18번을 넘어선 경우도 있었다. 월드리그와 월드그랑프리는 2017년부터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로 통합됐는데 이때부터는 1~99번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여유를 뒀다.

FIVB는 VNL에서 등번호 뿐 아니라 다양한 테스트를 한다. 여기서 반응이 좋거나 시행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내리면 이후 규정에 포함된다. 그 과정은 당연히 감독자 회의나 관계자 논의를 거친다. 이런 이유로 VNL에서는 20번 이상 되는 등번호를 달고 코트에 나오는 선수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FIVB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아직 VNL과 같은 등번호 규정을 적용하고 있지 않다.

최근에는 엔트리 등록 확대 여부에 따라 FIVB주최 각급 국제대회에서는 1~18번이 아닌 1~20번까지도 허용하는 추세다. 0번이나 00번 또는 세 자릿수 그리고 숫자에 기호를 조합하는 등번호는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다(VNL도 마찬가지). V-리그의 경우는 1~20번까지로 등번호를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팀 내 엔트리가 20명 이상일 경우 21, 22, 23번을 등번호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V-리그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배구연맹(KOVO) 규정상 경기에 정식으로 뛰려면 1~20번 사이 등번호를 단 유니폼을 입고 나와야 한다. 올 시즌을 기준으로 V-리그에서 20번 이상을 단 선수가 있는 구단은 4개 팀으로 모두 남자부다.

현대캐피탈은 신인인 노경민(아포짓)이 22번을 사용한다. OK금융그룹은 조성찬(리베로)이 21번을 달고 신인 최찬울(윙스파이커)과 문지훈(미들 블로커)은 23, 24번을 단다. 한국전력은 신인 이성환(미들 블로커)이 21번을 사용한다. 한국전력은 최근 등번호 조정이 있었다.

삼성화재와 트레이드를 통해 20번을 달고 있던 신인 정승현(세터)이 이적했기 때문에 등번호에 여유가 생겼다. 일본 V.리그의 경우는 2018-2019시즌부터 등번호 사용 범위를 넓혔다. VNL처럼 1~99번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VNL, 1~99번까지 & 유럽리그도 사용범위 확장 중
이탈리아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 터키리그 등 유럽리그에서도 최근 등번호 사용 범위를 넓히고 있는 추세다. VNL 영향이 크다. 배구 등번호는 다른 구기 종목과 비교하면 특징이 있다. 프로리그로 범위를 좁히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영구결번이다.

이유는 있다. FIVB 등번호 규정 때문이다. 등번호에 제한을 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VNL 영향으로 각국 리그에서 등번호 규정을 완화하는 추세라 앞으로는 영구 결번이 나오는 경우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V-리그는 2005년 겨울리그를 시작으로 지난 시즌까지 두 차례 영구 결번 사례가 있다. 남자부는 OK금융그룹이 OK저축은행 시절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는데 주역 중 한 명인 외국인선수 시몬(쿠바)이 사용한 13번을 영구 결번 지정했다. 

 


여자부는 IBK기업은행이 세터 김사니(현 IBK기업은행 코치)가 선수 시절 팀에서 달았던 9번을 영구 결번 지정했다. 김사니는 V-리그 원년 멤버로 IBK기업은행에 오기 전 한국도로공사-KT&G(현 KGC인삼공사)-흥국생명을 거쳤다. 세 팀에서는 줄곧 4번을 사용했으나 IBK기업은행 시절에는 9번을 달았다. 김희진이 4번을 이미 사용하고 있어서다.


김연경은 줄곧 10번…4·7번 선호 많아
V-리그를 포함해 전국에서 각급 선수로 활동하는 이들에게 설문 조사를 따로 실시하지 않았지만 선호하거나 되도록 달지 않으려는 등번호는 있다. 물론 트렌드에 따라 조금씩 변화한다.


포지션을 떠나 4, 7번을 달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많다. 포지션으로 구분할 경우 세터는 3, 6, 13번을 선호하고 공격형 윙스파이커나 아포짓의 경우 10, 15, 18번을 주로 달려고 한다. 단 자신이 번호를 고를 수 있는 상황이 되거나 해당 번호가 남아있을 경우다.

반대로 선호하지 않는 번호는 2, 16, 17, 19, 20번이다. 2번의 경우 부상 선수가 많이 나와서 그렇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실제 예로 밝혀진 건 아니다. 예전에는 야구에서 ‘에이스’ 번호로 알려진 1번과 11번은 배구에서만큼은 선호 등번호는 아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축구의 10번이 배구의 10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김연경의 경우 세터에서 윙스파이커로 자리를 옮긴 뒤부터 10번을 줄곧 달았다. 그는 한일전산여고(현 한봄고)부터 흥국생명, JT 마블러스(일본) 페네르바체(터키), 상하이(중국), 엑자시바시(터키) 그리고 ‘친정팀’ 흥국생명으로 와 V-리그에 복귀한 올 시즌까지 10번을 사용하고 있다. 2005년 처음으로 대표팀에 선발됐을 당시에도 그의 등번호는 10번이었다. 팬들과 배구 관계자 사이에서도 ‘김연경=10번’이 굳어졌다.

한 차례 예외가 있다. 김연경은 2018-2019시즌을 앞두고 중국리그를 떠나 다시 터키로 돌아갔다. 그는 엑자시바시와 2년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당시 팀에는 이미 등번호 10번을 사용 중인 선수가 있었다. 주전 윙스파이커인 조던 라르손(미국)이 그 주인공이다.

이런 이유로 18번을 달게 된 김연경은 2019-2020시즌 다시 10번을 되찾았다. 라르손이 오프시즌 상하이로 이적하자 10번이 비었고 김연경은 자신에게 익숙한 등번호로 바꿨다.

배구에서는 한동안 등번호가 주어지지 않은 자리가 있었다. 리베로가 그랬다. FIVB는 지난 1997년 월드리그에서 수비 전문 선수인 리베로 제도를 시범 도입했다. 그런데 리베로는 도입 초반 등번호가 없었다. 리베로 지정 선수는 포지션 영문(로마자) 표기인 ‘LIBERO’의 앞글자인 ‘L’이 표시된 조끼를 유니폼 위에 착용하고 코트에 나왔다.

FIVB가 이후 리베로를 정식 포지션으로 인정한 다음 코트 안에 있는 다른 포지션 선수 6명과 색깔이 구분되는 유니폼 착용 규정을 만든 뒤부터 등번호가 부여됐다. ‘L’이 그려진 조끼는 지금도 유용하다. 리베로가 부상으로 뛸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 더이상 리베로 교체 선수가 없을 때 임시로 리베로로 지정된 선수가 유니폼 위에 착용하는 경우가 있다.


남는 번호는 선착순
박철우(한국전력), 김요한(은퇴, 현 KBSN스포츠 배구 해설위원), 문성민(현대캐피탈)은 2000년대 초중반 한국 남자배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인공으로 꼽혔다. 세 선수 중 박철우가 가장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경북사대부고 졸업반 당시 대학 진학 대신 바로 실업 무대를 노크했다. 현대캐피탈에 입단해 V-리그 원년 멤버가 됐다. 현대캐피탈에서 등번호 13번을 달고 후인정(현 경기대 코치)의 뒤를 이을 차세대 아포짓으로 성장했다. 박철우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2010년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그는 삼성화재에서 등번호를 3번으로 바꿨다.

 


박철우는 “현대캐피탈에서 달았던 13번을 그대로 달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박철우에 앞서 삼성화재에서 해당 번호를 달고 뛴 주인공이 있다. 주전 아포짓으로 활약한 김세진 전 감독(현 KBSN스포츠 배구해설위원)이다. 그는 박철우와 같은 왼손잡이 아포짓으로 선수 시절 국내뿐 아니라 헤외 배구계에서도 주목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갖췄다.

박철우는 “같은 왼손잡이 아포짓인 장병철 선배(현 한국전력 감독)가 달았던 18번도 고려했는데 결국 3번을 달기로 했다”고 말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박철우는 FA 계약으로 새로운 선택을 했다. 그는 오프시즌 장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한국전력으로 이적했다. 박철우는 이때도 등번호 교체를 고려했다. 그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13번을 다시 생각했는데 삼성화재 시절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마침 번호가 남아있었고 권영민 코치가 현역 선수 시절 달았던 번호”라고 웃었다.

권 코치는 현대캐피탈에서 박철우가 삼성화재로 이적할 때까지 한솥밥을 먹었다. 선수 시절 현대캐피탈 주전 세터로 활약한 권 코치는 대표팀에서도 아포짓 박철우에게 패스를 보냈다. 권 코치는 현대캐피탈-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한국전력에서 뛸 때 계속 3번을 달았다.

문성민과 김요한은 각각 4번과 14번이 익숙하다. 그런데 두 선수는 경기대(문성민)와 인하대(김요한) 시절 해당 번호가 아니었다. 문성민은 7번, 김요한은 5번을 사용했다. 4번과 14번이 눈에 익은 이유는 대표팀에서 활약과 인상 때문이다. 두 선수는 2006년 월드리그를 통해 처음 시니어대표팀 태극마크를 달았고 그해 12월 카타르에서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문성민은 “당시 대표팀 막내였는데 (김)요한이 형과 남은 번호를 골라야 했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없이 4번을 선택했다.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선수의 대표팀에서 활약으로 4, 14번 이미지가 굳어졌다. 문성민은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 프리드리히스하펜, 할크방크(터키)를 거쳐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고 V-리그에 데뷔했다.

프리드리히스하펜과 할크방크에서는 5번을 달았다. 프리드리히스하펜(독일)에서 4번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했지만 이미 주인이 있었다. 그래서 비어있던 하나 위 배번을 선택했고 할크방크, 현대캐피탈까지 오랜 기간 이용했다. 그는 2017-2018시즌부터 15번으로 등번호를 교체했다. 이유는 같았다. 문성민은 “두 자릿수 번호를 한번 달아보고 싶었다. 큰 의미는 없다”고 했다.


김요한은 LIG손해보험에 입단하며 5번을 사용했고 은퇴 전 마지막으로 뛴 OK저축은행(현 OK금융그룹)에서도 같은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다.


신영석 한국전력 이적 후 18번→1번으로 교체
11월 13일 선수 5명과 2021-22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이 포함된 대형 트레이드 소식이 V-리그에 전해졌다. 한국전력과 현대캐피탈 사이에 ‘빅딜’이 성사됐다. 현대캐피탈 주전 미들 블로커 신영석과 백업 세터 황동일 그리고 상무(국군체육부대)에서 군 복무 중인 윙스파이커 김지한이 한국전력으로 팀을 옮겼다.

한국전력에서는 신인 지명권과 함께 장신 세터 김명관, 유망주로 꼽히는 윙스파이커 이승준이 현대캐피탈로 이동했다. 신영석의 경우 한국전력 이적 후 한 가지 변화를 줬다. 등번호다.

 


그는 대학(경기대)시절부터 우리캐피탈(현 우리카드)과 현대캐피탈까지 18번을 달았다. 그러나 한국전력으로 온 뒤 1번 유니폼을 입었다. 장 감독은 “(신)영석이가 배번에 대한 요구는 따로 하지 않았다. 선수단 내 남아있는 번호가 1, 6, 8번인데 영석이가 팀에 온 뒤 그 세 번호 중 1번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황동일은 신영석이 선택을 한 뒤 6, 9번 중 6번을 택했다. 한국전력은 군 복무 중인 서재덕이 1번을 사용했다. 장 감독은 “올 시즌 종료 후 등번호도 한 번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미들 블로커 박상하(삼성화재)는 오프시즌 등번호를 17번에서 10번으로 변경했다. 박상하는 “분위기를 한번 바꿔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고희진 감독이 부임했기에 ‘기’를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 감독은 선수 시절 삼성화재 왕조의 한 부분을 받쳤다. 미들 블로커로 코트에서 뛰었고 등번호는 10번이었다. 같은 포지션인 박상하는 이런 이유로 변화를 준 셈이다. 그는 “삼성화재 이적 후 부상도 있었고 제 컨디션을 보인 적이 얼마 없었다”며 “그만큼 올 시즌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바람이 등번호 교체로 나타났다.

흥국생명 이다영은 FA 자격을 얻어 현대건설에서 이적한 뒤 등번호를 바꿨다. 그는 19번에서 11번으로 바뀐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나선다. 지난 시즌 해당 번호를 달고 뛴 박현주는 IBK기업은행으로 이적한 조송화(세터)가 사용한 14번으로 교체했다.

외국인선수가 특정 등번호를 요청한 경우도 있다. 2015-2016시즌 삼성화재에서 주포로 활약한 그로저(독일)가 그렇다. 그에게 성인 배구 무대 데뷔팀이 된 뫼르저SC부터 문성민과 함께 뛴 프리드리히스하펜에서도 9번은 그로저의 몫이었다. 리그를 폴란드, 중국, 러시아, 이탈리아로 옮긴 뒤에도 9번 사랑은 늘 한결같았다. 독일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로저는 “가족 영향이 컸다”며 “어릴 때 배구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 9번 유니폼을 입어 애착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로저는 “계약서 내용에 등번호를 9번으로 해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가 삼성화재로 온 뒤 기존에 9번을 사용하던 미들 블로커 이선규(현 SBS스포츠 배구 해설위원)가 3번으로 변경했다. 이선규가 3번을 달 수 있던 이유는 당시 박철우가 군 복무 중으로 삼성화재를 떠나 있어 사용이 가능했다.


글/ 류한준 조이뉴스24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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