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어려움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한국도로공사 문정원

매거진 / 이정원 기자 / 2020-12-20 03:49:30

 

냉혹한 프로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떨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나 지명 순위가 낮은 선수라면 상위 지명 선수보다 적은 기회를 부여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 문정원에게 이러한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 키 174cm인 문정원은 높이가 지배하는 배구 코트에서 갖은 고난을 극복하며 큰 존재감을 보여왔다. 데뷔 후 세 시즌 출전 경기 수가 17경기에 불과하고, 전방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린 적도 있다. 문정원은 그래도 버티고 또 버텼다. 결국 한국도로공사에서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자리 잡았다. 데뷔 이래 어느덧 열 번째 시즌, 문정원은 한국도로공사 프랜차이즈 길을 걷고 있다. 누군가는 키가 작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부상 때문에 안 된다고 했지만 문정원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 <더스파이크> 2020년 마지막 호를 장식한 주인공 문정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그의 배구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보자.


팀 성적이 저조해도 항상 차분하게


2018년 4월호 이후 오랜만에 <더스파이크> 표지를 장식한 문정원. 다시 한번 표지를 장식하게 된 소감을 물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글쎄요. 팀 성적도 좋지 않은데 말이죠(웃음).”

 

문정원의 말처럼 한국도로공사의 최근 성적은 저조하다. 2019-2020시즌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조기 종료의 영향도 있지만 최하위에 머물렀고, 올 시즌에도 아직 5위에 머물러 있다. 문정원은 인터뷰 직전 선수단과 함께 분위기를 반전하고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김천 옆에 위치한 구미로 가 점심 식사 모임을 가지고 왔다. 

 

“우리끼리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해요. 이야기를 많이 해야 서로 잘 맞춰지죠. (임)명옥 언니, (정)대영 언니뿐만 아니라 주장 (박)정아도 자기 의견을 내는 편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팀 선수들이 실수하면 그 미안함을 갖고 경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안 되거든요. 잊을 건 잊고 해야 되죠. 그런 이야기를 했죠.”

 

소통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의 큰 문제점은 새로 들어온 이고은과 공격수 들 간의 호흡이 아직까지 맞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종민 감독 역시 경기 전후로 “이고은과 공격수들 간의 호흡이 더 좋아져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고은은 올해 초 은퇴를 선언한 이효희(한국도로공사 코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GS칼텍스에서 넘어왔다. 하지만 오자마자 ‘대세터’ 이효희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정원 역시 “세터가 가장 큰 변화죠. 개인적으로 효쌤(이효희의 애칭)과 호흡을 맞춘 시간만 5년이 넘어요. 폼만 봐도 어떤 공이 올지 알았죠. 하지만 고은이랑은 신인 시절 이후 오랜만에 맞추는 거잖아요. 그때랑 지금이랑 다른 점이 많아요. 조금씩 알아가고 있죠”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패배의 아픔을 겪으면서 얻는 교훈도 많다. ‘냉정함을 찾고, 차분하게 경기에 임하자’. 항상 문정원이 가슴속에 담고 있는 말이다. “경기에서 지면 선수로서 당연히 힘들죠. 제가 못 해 팀이 지면, 그것만큼 힘든 게 없는 것 같아요. 제 활약이 좋지 못해도 팀이 이기면 그건 정말 다행이고요. 패할 때마다 항상 생각을 해요. 모든 잡념을 다 지우려고요. 그리고 ‘조금 더 차분하게 잊고, 침착하게 하자’라고 생각해요.”

 

2014년에 찾아온 방출 위기


문정원은 2011-2012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로 한국도로공사에 지명을 받았다. 어느덧 프로 데뷔 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오래 할지 몰랐다.” 이 한 마디가 그녀의 프로 인생을 대변해 준다. 

 

프로 초년기는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잠재력을 가졌어도 프로에서는 달랐다.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문정원은 공격수로서 비교적 작은 174cm의 신장을 가졌다. 또한 그 즈음 한국도로공사에는 국내 공격수 자원이 많았다. 황민경(현대건설), 김선영(은퇴), 표승주(IBK기업은행), 고예림(현대건설), 김미연(흥국생명) 등과 경쟁에서 밀렸다. 2011-2012시즌 11경기, 2012-2013시즌 4경기, 2013-2014시즌 2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로 인해 동기들보다 FA 자격도 늦게 얻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감이 제일 중요했던 것 같은데,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래서 언니들이 항상 ‘자신감 갖고 버텨라’라고 말했던 예전이 이제는 이해가 가요. 지금 박현주(흥국생명)를 비롯해 어린 선수들은 대단한 거에요. 전 예전에 손이 떨려 서브도 넣지 못했어요(웃음).”

 

두 경기 출전에 그쳤던 2013-2014시즌은 프로 인생에 있어 첫 번째 고비였다. 경기 출전을 못 해서 공을 못 만지니 답답했다. 공에 대한 갈증을 야간 훈련으로 채워야만 했다. 지금은 GS칼텍스 수석코치인 이용희 코치가 문정원에게 큰 힘이 됐다. 

 

“3년차가 고비였어요. 경기 출전을 못 하면 공 만질 일이 없잖아요. 야간 훈련 때 원 없이 공을 때리고 잤어요. 그때가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GS칼텍스 수석코치인 이용희 코치님이랑 항상 울면서 배구를 했죠. 그 당시 저에게 도움도 많이 주고 힘을 줬죠. 용희 코치님도 그때 한국도로공사 막내 코치였거든요. 서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어요. 지금도 연락을 자주 하고 있고요. 그때가 프로 생활하면서 첫 힘든 고비였던 것 같아요.”

 

위기는 2013-2014시즌 종료 후 또 한 번 찾아왔다. 바로 방출 위기였다. 한국도로공사에는 국내 공격수 자원이 넘쳐났다. 당시 한국도로공사를 이끌던 서남원 감독은 기회를 잡지 못하는 제자에게 실업행을 권유했다. 하지만 문정원은 단호하게 ‘NO’라고 대답했다. 

 

“실력이 안 되는 건 인정했죠. 저뿐만 아니라 민경 언니, 미연이, 유화, 선영 언니, 승주까지. 모두가 저보다 잘 했거든요. 감독님께서도 실업팀 가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실업팀에서 러브콜도 왔고요. 그런데 저는 바로 “싫어요. 안 갈래요”라고 말했어요. 부족한 건 알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문정원은 한국도로공사에서 다시 뛸 수 있게 됐다. 

 

문정원에게 어쩌면 프로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었던 2014-2015시즌이 왔다. 시즌 초반 문정원은 주전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면 기회가 온다고 하던가. 시즌 초반 리시브가 흔들리자 서남원 감독은 문정원에게 기회를 줬다. 그리고 문정원은 그 기회를 잡았다. 중반부터는 주전으로 출전했다. 그 결과 팀은 정규리그 우승,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문정원 역시 28경기(100세트)에 출전해 255점, 공격 성공률 39.79%, 서브 세트당 0.56개, 리시브효율 47.09%를 기록했다. 프로 네 번째 시즌에 드디어 꽃을 피운 것이다. 이제는 꽃길만 오는 듯했다. 하지만 인생을 뒤흔드는 진짜 위기가 찾아온다. 

 

2015년 8월의 악몽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문정원의 배구 인생을 뒤흔드는 진짜 위기는 2015년 8월에 왔다. 2015 청주·KOVO컵 프로배구대회 이후 팀 훈련에 매진하던 문정원은 공격 후 착지하다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입었다. 이제 빛을 보기 시작했기에, 힘들게 잡은 기회였기에 문정원은 더 속상했다. 문정원은 체육관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그땐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하늘이 떠나가라 울었어요. 바운드된 공을 한 발로 피하려다가 무릎이 완전히 흔들렸죠. 진짜 정신이 없더라고요. 이때 정말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2015-2016시즌은 아예 뛰지 못했다. 활발한 성격을 가진 문정원에게 재활 과정은 너무나도 가혹한 시간이었다. 외출, 외박은 물론이고 연습체육관 옥상도 못 올라갔다고 한다.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문정원이 불필요하게 움직이다가 또 부상을 당할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코칭스태프가 내린 결정이었다. “진짜 그때는 ‘나의 배구 인생은 여기까지인가?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못 나가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냥 숙소에서 영화만 본 것 같아요. 재활 과정은 버티는 거에 연속인 것 같아요. 그냥 계속 버텼어요.”

 

10개월의 힘든 재활 과정이 끝나고 왔을 때 팀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서남원, 이호 감독을 거쳐 지금의 김종민 감독이 새로 부임한 것이다. “10개월 재활하고 복귀를 했는데 너무 불안한 거예요. 연습을 하는 데도 불안감이 저를 감싸 안았죠. 제가 계속 절면서 수비를 하니까 김종민 감독님께서 다시 재활을 하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다시 재활을 했죠.” 

 

김종민 감독은 재활 중인 문정원에게 수비 연습도 병행할 것을 요구했다. 무릎 부상으로 공격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은 문정원에게 새로운 미션을 주며 새 선수로 태어나길 바랐다. 또한 작은 키로 프로에서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 서브 외에 공격에서 특출난 장점이 없는 문정원이다. 그래서 더 수비 훈련에 집중할 것을 요했다.

 

“재활 끝나고 복귀했을 때 감독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공격은 아직 무리니 수비형 공격수로 가자’라고요. 제 강점이 서브밖에 없잖아요. 디그나 리시브를 돋보이게 해 주신 분이 김종민 감독님이에요. 디그랑 리시브 훈련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그때부터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 되는 지 알겠더라고요. 문정원이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게 해주신 분이 어떻게 보면 김종민 감독님이죠. 감독님은 정이 많아요. 화를 내시면 꼭 다시 와서 장난을 치세요. 사소한 부분에도 많이 도움을 주시는 분이죠.”

 

2016-2017시즌 예열을 한 문정원은 2017-2018시즌에 폭발한다. 29경기(117세트)에 출전해 131점, 공격 성공률 37.09%, 리시브효율 48.03%를 기록하며 팀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끈 것이다. 특히 문정원은 임명옥과 함께 ‘2인 리시브’를 잘 버텼다. 시즌 내내 팀 리시브 전체의 절반을 받은 것이다. 리시브시도 1,218회를 기록했다. 엄청난 수치다(문정원은 2017-2018시즌 개막 전에 다녀온 일본 전지훈련에서의 맹훈련이 큰 효과를 봤다고 이야기했다). 이때부터 ‘수비형 공격수’라는 신조어가 문정원에게 붙었다. 문정원은 한국배구연맹(KOVO)에 아포짓 스파이커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 플레이 스타일은 윙스파이커에 가깝다. 

 

문정원은 2018-2019시즌에도 29경기(115세트) 166점, 공격 성공률 35.38%, 리시브효율 52.85%를 기록했다. 또한 2019-2020시즌에도 25경기(97세트)에 출전해 206점, 공격 성공률 35.38%, 리시브효율 42.75%를 기록했다. 특히 세 시즌 연속 리시브 시도 1,000회 이상을 기록했다. 2019-2020시즌에는 여자부에서 유일하게 네 자릿수 리시브 시도를 기록했다(2017-2018시즌 1,218회, 2018-2019시즌 1,264회, 2019-2020시즌 1,034회).

 

“2017-2018시즌 전에 일본전지훈련에 가서 엄청 울었어요. 진짜 힘들었어요. 명옥 언니와 2인 리시브를 하고 있잖아요. 세 명이서 리시브하면 덜 힘들 텐데 두 명이니 진짜 힘들죠.”

 

문정원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베테랑 리베로 임명옥이다. 김종민 감독이 코트 밖에서 힘이 돼준다면, 임명옥은 코트 안에서 문정원에게 힘이 돼준다. 문정원은 “감독님께서 내 무릎이 걱정되어서 그런지 항상 술을 먹지 말라고 하더라”라고 웃은 뒤 “내 리시브가 흔들리면 감독님이 명옥 언니를 불러 ‘정원이 좀 잘 챙겨줘’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감독님이나 명옥 언니나 다 내 생각을 많이 해준다. 명옥 언니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라고 이야기했다. 

 


문정원이 후배들에게

“얘들아, 버티고 버터야 해”

 

힘든 고비를 견뎌내고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는 문정원은 2라운드, 3라운드 즉 신인드래프트 하위 라운드 출신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되는 선수다. 거기에 문정원은 부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순간을 이겨내고 올라섰다.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다. 

 

2019-2020시즌 여자부 신인왕 박현주(흥국생명)는 문정원을 롤모델로 뽑았다. 두 선수 모두 2라운드 지명에 왼손잡이 서버라는 공통점이 있다(문정원 2라운드 4순위, 박현주 2라운드 1순위). 문정원 174cm, 박현주 176cm. 신장도 비슷하다. 

 

지난 4월 <더스파이크>와 인터뷰를 가졌던 박현주는 “서브를 처음 배울 때부터 정원 언니 서브 영상을 보면서 배웠다. 신장이 나랑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기본기도 좋고 스윙 속도도 매우 빠르다. 언니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다. 정원 언니는 팀에 중심이다. 나도 언젠가는 팀에 필요한 중심 선수가 되고 싶다. 언젠가 ‘흥국생명 하면 박현주’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문정원에 대한 존경심을 보인 바 있다. 

 

누군가에게 롤모델이 된다. 정말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문정원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하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너무 고맙죠. 롤모델을 바라만 봤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 몰랐어요.”

 

매년 신인 선수들이 들어온다. 그중에는 버티는 선수도 있는 반면, 버티지 못 하고 그만두는 선수도 있다. 그런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버텨라’다.

 

“버티란 말이 있잖아요. 안 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뭐라도 해보는 게 나아요. 1년, 1년 경험치를 무시 못 하거든요. 기회는 내가 원한다고 오는 게 아니에요. 꾸준하게 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뛰고 있는 대영 언니나 명옥 언니가 대단한 거에요. 끝까지 버티고 버텨 자리를 지킨 거잖아요.”

 

그에게도 롤모델은 있다. 지금은 현대건설 윙스파이커 황민경이다. 황민경이 가지고 있는 승부욕, 파이팅이 문정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황민경은 현대건설 주장이다. 리더십도 문정원이 배우고자 하는 부분 중 하나다. 

 

문정원은 “지금은 민경 언니다. 언니가 좋다. 파이팅도 좋고, 승부욕도 있고, 팀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 아는 언니다. 민경 언니처럼 배구를 하고 싶다. 단심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도 괜찮고 수비도 잘 한다. 보고 배우는 편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유급

그때 배운 ‘배구의 맛’

 

롤모델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롤모델과 배구 이야기도 안 물어볼 수 없었다. 문정원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많이 기사화되지 않았다. 문정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본격적으로 배구의 길을 걸었다. 그전에는 단거리 육상을 했다. 육상을 하다 배구로 넘어온 이유를 묻자 그는 “친구 부모님이 배구 관련 일을 하셨다. 그래서 친구가 배구하니까 나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친구는 배구를 안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를 가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라고 웃었다. 

 

 

그러다 송원중 3학년 때 한차례 유급을 하게 된다. 또래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한 템포 쉬어갔으면 하는 주위의 권유가 있었다(당시에는 초등학교 6학년에 운동을 시작하면 꽤 늦게 시작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반대했다. “집에서는 절대 반대했죠. 사실 동생들이랑 같은 학년으로 학교를 다닌다는 게 좋은 게 아니잖아요. 성적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엄청 혼났을 거에요.”

 

한 살 어린 동생들과 중학교 3학년 생활을 하면서 배운 점은 많았다. 성격이 바뀌었다. “한 살 어린 동생들이랑 있으면서 많이 배웠죠. 정이 많아지더라고요. 그 전에는 나만 알았다면 이젠 주위도 챙기죠. 배구는 팀 운동이잖아요. 단합을 알게 됐죠.”

 

송원중을 졸업한 후 송원여상으로 진학한 문정원은 송원여상 배구부가 폐부되면서 목포여상으로 전학을 갔다. 여기서 문정원은 유스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고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문정원은 “고등학교 때 유스대표팀을 처음 들어갔다. 사실 그때 전까지 프로팀이 있는지 몰랐다. 배구가 좋아서 한 건데, 우리나라에 프로리그가 있다는 걸 대표팀 들어가 알았다. 그전에는 프로 경기를 본 적이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정원은 “지금은 롤모델이 민경 언니라면 그때는 (백)목화 언니였다. 언니 밖에 안 보였다. 언니가 하는 배구가 좋았다. 특히 서브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느낀 목화 언니는 언제나 최고였다”라고 덧붙였다. 백목화 역시 송원중·송원여상 배구부 출신이다. 

 

문정원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서브다. 서브 역시 어릴 적 롤모델 백목화의 영향을 받았다. 왼쪽 광고판 뒤에서 부채꼴 모양을 그리며 달려와 넣는 서브는 상대에게 굉장한 위압감을 준다. 받기 힘들다. 2014-2015시즌에는 27경기 연속 서브에이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2018-2019시즌, 2019-2020시즌에 여자부 서브 1위에 올랐다. V-리그 여자부 출범 후 두 시즌 연속 서브 1위에 오른 이는 문정원이 유일하다. 또한 역대 최소경기(147경기) 200서브를 달성한 주인공이다.

 

“어릴 때 하고 지금 하고 서브법은 비슷해요. 힘이 부족하니까 달려가면서 때리면 힘이 붙잖아요. 최고의 힘을 발휘하려고 그렇게 서브를 넣어요. 다만 예전에는 강하고, 날카롭게만 넣으려고 했다면 지금은 중간중간 코스를 공략하는 빠른 서브를 구사하려고 해요.” 

 

‘혹시 플로터 서브를 구사할 생각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문정원은 “저 플로터 서브도 때릴 수 있어요”라고 웃은 뒤 “바꾸고 싶죠. 지금 서브가 힘들죠. 하지만 팀을 위해서도 있고, 제 서브로 경기가 반전될 때가 있잖아요. 힘들어도 그 서브가 좋은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도 항상 말씀하시는 게 빨리 때리라고 해요. 살살 때리면 제 볼은 매력이 없다고 해요”라고 말했다. 이어 서브는 첫째도 자신감, 둘째도 자신감이라고 강조했다. 

 

#2021년 #결혼 #한국도로공사 레전드

 

문정원은 지난 시즌 종료 후 첫 FA 자격을 얻었다. 동기들보다 세 시즌이 늦었다. 데뷔 후 세 시즌 출전 경기 수가 적었다. 비시즌, 서브와 수비가 강점인 문정원을 향해 러브콜이 쏟아졌다. 실제로 한 구단은 문정원에게 적극적인 구애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문정원은 한국도로공사를 떠나지 않았다. 1억 9,000만 원(연봉 1억 6,000만 원, 옵션 3,000만 원)을 받는 조건을 팀에 남았다.

 

 

“처음 시작이 여기였잖아요. 남달라요. 애정이 가요. 오래 있다 보니까 집 같아요. 구단에서도 잘 해주니 다른 팀으로 떠날 이유가 없죠. 다만 지난 시즌 팀 성적이 좋은 상황에서 FA가 됐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다 잊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죠.”

 

팀에 남은 이유 중 하나가 김종민 감독의 설득이었다. 문정원은 “감독님 영향이 크다. 나에게 ‘네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해주더라. 사실 내가 뭐라고 그런 말을 하셨겠나. 믿으니까 그런 말을 한 게 아니겠나. 감독님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2021년이면 문정원도 한국 나이로 30세다. “제가 벌써 30살이라니 실감이 안 나요. 민경 언니가 29살일 때 제가 정말 놀렸거든요. ‘이제 언니도 계란 한 판이다’라고요. 근데 저도 이제 계란 한 판이네요. 믿기지가 않아요. 내년에는 후배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될 것 같은데 그럼 꼰대 소리 듣겠죠(웃음).”

 

누군가 문정원에게 ‘언제까지 할 거야’라고 물으면 “내 몸이 할 수 있는데까지”라고 답한다. 그래서 지금도, 나중에도 몸 관리는 필수다. 그리고 지금쯤 생각해볼 결혼, 문정원은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 지금은 배구에만 집중하고자 한다. 배구 선수로서 이뤄야 될 목표가 많기에 결혼은 잠시 뒤로 미룬다. “지금은 결혼에 크게 생각이 없어요. 사실 2018년, 2019년에는 결혼을 빨리하고 싶었는데 시기를 놓쳤어요.”

 

말을 이어간 문정원은 “이루고 싶은 게 많아요. 일단 국가대표에 다시 가보고 싶어요. 물론 예전에도 가긴 갔는데 대부분 웜업존에서 경기만 지켜봤거든요. 주전으로 뛰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도로공사에서 한 번 더 우승을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마음가짐이나 승부근성이 필요하다. 열심히 해야 한다”라며 “키플레이어는 고은이다. 감독님이 있긴 하지만 코트 위에서는 고은이가 지휘해야 한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선수다. 많은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어느덧 문정원과 길고 길었던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녀에게 물었다. ‘10년 후 문정원은 과연 뭘 하고 있을지’. 문정원은 “배구 선수는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하고 싶을 것 같다. 감독은 힘들 것 같고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코치를 해보고 싶다. 우리 감독님 보면 굉장히 힘든 자리가 감독인 것 같다. 선수들 다 컨트롤해야 되는 데 어후, 난 못 할 것 같다”라고 웃었다. 

 

문정원은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위 라운드 지명, 키 작은 선수들에게 남기는 말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말고,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

 

한국도로공사에서 굴곡을 이겨내고 프랜차이즈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문정원이다. 문정원은 “나 혼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 안 한다. 실력이 오른 것도 있지만 운도 좋았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 더 좋은 선수, 더 좋은 사람 될 테니 언제나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현재 한국도로공사에서 문정원보다 팀에 오래 머문 선수는 없다. 고난의 시간을 극복해온 문정원의 배구 인생에 이제는 꽃길만이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문정원 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

#코보티비 대주주 

‘코보티비’ 대주주가 여기 있는데 요즘 ‘코보티비’가 김천에 안 오네요. 가서 좀 전해주세요. 대주주가 여기 있는데 왜 안 오냐고요(웃음). 

 

#문라이트

제 포지션이 라이트다 보니까 어떤 코치님이 제 성을 따 ‘문라이트’라고 붙여줬어요. 문(Moon)하면 달이 떠오르잖아요. 제가 달을 좋아하거든요. ‘문라이트’가 좋아요. 

 

#닮은꼴 배우 천우희

닮았나요? 배우 윤승아 닮았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문똘’이라고 맨날 놀려요. 숙소에서는 화장을 잘 안 하잖아요.

 

 

글/ 이정원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더스파이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THE SPIKE SNS